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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의료원에 10억원 쾌척한 김양자 대표 '배우자의 생전 의지 이제야 이뤄 홀가분'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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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의료원에 10억원 쾌척한 김양자 대표

"배우자의 생전 의지 이제야 이뤄 홀가분"

김양자 대표(왼쪽)가 기부식에 참석해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과 함께 감사패를 들고 있다.
 
"남편의 뜻을 이제야 이행하니 홀가분합니다."
9월21일 고려대의료원에 10억원을 기부한 김양자 예맥화랑 대표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김 대표의 배우자는 2008년 세상을 떠난 고(故) 구병삼 전 고려대 의무부총장. 산부인과 의사로서 국내 의료계의 발전을 이끌어온 구 부총장은 생전에 모교발전과 후학 양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인사로도 유명했다. 김 대표를 만나 기부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구병삼 전 부총장은 한평생을 고려대의료원과 함께 했다. 1971년 고려대 의대 산부인과의 전임강사가 된 남편은 곧 조교수로 임용됐고 그 후 고려대 의대 부속 혜화병원의 제 14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혜화병원이 안암동으로 이전하면서 김대표의 남편은 고려대 안암병원 초대 원장으로 임명된 뒤 제 2대, 3대 고려대 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김 대표는 남편을 회고하며 "남편은 평생 '고대인'으로 헌신했고 언제나 고려대의료원의 발전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한국 의료계를 선도하는 의료기관, 의학계를 이끄는 구심점,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편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한국 의료계의 성장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1970년대부터 미국 존스홉킨스대, 싱가포르 K.K.병원(Kandang Kerbau Hospital), 덴마크 코펜하겐대 리스병원, 미국 예일대, 영국 킹스대병원, 호주 모나쉬 병원 등 세계 유수의 의료기관을 종횡무진하며 선진 의료를 배웠다. 이렇게 얻은 지식은 곧 국내 의학의 위상을 드높이는 성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1985년 국내 최초로 냉동정액을 사용해 인공수정아 2명을 출산시킨 일은 한국 의학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인공수정은 당시 의료선진국에선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국내에선 요원한 일이었다. 국내의 수많은 난임 부부들에겐 반갑기 그지없는 소식이었다. 덴마크에서 자비로 체외수정에 필요한 장비를 공수하고 실험용 쥐를 연구실에서 직접 사육하며 연구를 거듭해온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부는 남편의 오래된 의지, 내게 남겨진 마지막 사명"

제 2대, 3대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역임했던 고(故) 구병삼 교수.
 
기부 활동 역시 고려대의료원 발전을 위해 생전 남편이 염두에 두던 방안 중 하나였다. 남편의 기부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남편은 퇴임한 이후 2007년과 2008년 각 5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남편이 작고한 이후 유지를 받든 유족들은 1억원의 의학발전기금을 선뜻 내놨다. 김 대표는 "남편이 처음 기부를 생각했을 때는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고 원하는 만큼 도움을 보태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떠나가신 후 가계를 꾸리면서 당신이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에 대해 마음이 쓰였는데 때를 놓치기 전에 주어진 마지막 사명을 완수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올해 기부의 동기를 밝혔다. 올해 기부금은 김 대표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임대보증금으로 마련됐다. 언젠가 임차인들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지만 하루빨리 약속을 이루기 위해 우선 자금을 융통했다. 김 대표는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남편의 뜻을 이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의사로서 남편이 보여준 열정은 자녀들의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다. 장남 승엽 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병원에서 남편과 마찬가지로 산부인과 교수의 길을 걷고 있다. 차남 두엽 씨 또한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삼남 상엽 씨는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남편이 의료원을 돌보느라 자식 교육에 관심 한번 쏟은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 스스로가 부친과 닮은 삶을 살아가고자 애를 썼다"고 말했다. 이어 "둘째의 경우 고려대 의대에 진학해 2대에 걸쳐 고려대, 고려대의료원과 인연을 맺게 됐다"며 "우리 가족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의학계 발전 이끌 인재 양성에 알차게 쓰이길"

김양자 대표가 안암병원에 기증한 미술작품
 

'이번 기부금 사용처를 지정했나'는 질문에 김 대표는 "의료원이 적재적소에 잘 사용해 줄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의학발전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고려대의료원이 앞으로 해외 어느 의료기관에 뒤지지 않는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남편이 각국에서 '발품'을 팔아 의료기술을 들여오던 시기를 넘어 이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의료계를 주도할 때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후학 양성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남편이 후배와 제자들의 성장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다"며 "미래를 이끌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에 항상 책임감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기부가 우리나라 의학발전을 이끌 인재를 배출하는 것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남편이 바라던 바"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서울 논현역 앞 예맥화랑과 70년 전통의 중식당 취영루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15년 고려대 안암병원에 미술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날 고대 안암병원에서 열린 기부식을 앞두고 최근 새 단장을 위해 마무리 공사에 들어간 안암병원 신관을 둘러보았다.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병원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느꼈다. 김 대표는 "남편이 당신의 거처보다 더 아끼며 가꿔온 병원이 이토록 발전한 것을 보니 하늘에서도 기쁘게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